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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Column)/경제

넛지와 자유 : 개인의 선택에 대한 국가의 개입

by 방구석베짱이 2021.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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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동경제학의 시작

심리학자인 대니얼 카너먼이 인간의 사고편향과 휴리스틱을 연구하면서부터 행동경제학(혹은 행태경제학)이 시작되었다. 이전까지의 경제학에서는 인간이 합리적 존재라는 가정이 전제되어 있었다. 즉, 인간들이 모든 선택지들의 비용과 효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학의 주요 도구로 수치와 수학이 활용되었다.

 

그러나 카너먼은 인간이 합리적 존재라는 가정에 반기를 들었다. 가령 객관적으로는 같은 양의 이득과 손실이 있을 때 인간은 후자에 더 민감하다는 전망 이론(Prospect Theory)이 그것이다. 이외의 연구에서도 카너먼은 인간은 때때로 불합리하고 편향적인 존재임을 증명하였다. 그렇게 인간의 사고편향과 휴리스틱 등 심리학적 요소를 경제활동과 연관지어 설명하는 행동경제학은 기존의 경제학이 설명하지 못한 부분을 메워줌으로써 급부상하였다.

 

 

허버트 사이먼 [출처: https://www.findagrave.com]

2. 허버트 사이먼

비슷한 시기에 인지과학자이자 행정학자인 허버트 사이먼도 카너먼과 유사한 주장을 했다. 인간은 의사결정 시에 최적의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만족하는 정도에서 선택한다는 만족모형, 인간은 시공간, 인지적 오류를 비롯한 수많은 제약 속에 있고 따라서 제한된 합리성을 발휘한다는 주장이었다.

 

 

3. 넛지

이렇듯 인간의 합리성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가 계속되면서 행동경제학의 위상은 점진적으로 올라갔다. 책 '넛지'는 그 징표라 할 수 있다. 선스타인과 세일러가 쓴 이 책은 인간의 합리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불합리성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내용은 이렇다. 예를 들어 인간들은 긴 설문이나 동의 요구서를 받아들었을 때 질문 하나하나를 집중해 읽는 데 드는 많은 에너지를 비용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그것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 할 필요가 있음에도 대강 확인하고 넘겨버리는 특성을 보이고 대개 문서나 설문지에 미리 설정된 결정을 따른다. 초기에 설정된 Default Option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간의 편향에 대한 설명에 덧붙여 저자들은 초기 설정값을 잘 활용해 사람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라는 조언까지 한다.

 

재난지원금 신청 페이지 [출처 : 네이버 블로그 일상의 기록, 일상다반사]

4. 교묘한 넛지

Default Option을 아주 잘 활용한 사례를 한국에서 찾아보라고 한다면, 단연 재난지원금 신청 시 기부 동의를 꼽을 수 있다. 2020년에 정부가 국민들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면서 "어려운 이들을 위해 기부해주셨으면..." 하고 대대적 언론홍보를 하고 공무원들이 앞장선 적이 있었다. 그와 동시에 지원금 신청 페이지 마지막 즈음에 '기부하기'를 초기값으로 설정해 두었다. 무의식적으로 동의와 확인, 신청완료를 누른 사람들은 졸지에 재난지원금 기부자가 되어버렸다. 당연히 기부신청 취소가 줄을 이었다.

 

 

 

5. 무엇이 비합리적인가

선택은 인간의 인지능력과 정보를 활용해 이루어진다. 개인의 감정, 욕망, 경험 등과 관련된 정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당사자는 바로 본인이다. 재난지원금 신청을 할 때 주먹구구식으로 보고 넘기는 것도 다른 곳에 쓸 에너지 등을 고려해 본능적으로 나온 행동일 뿐이다. 즉, 행동은 합리적이다. 합리적 행동의 결과인 기부신청이 비합리적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사이먼의 주장은 이상하다. 세상에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제약들이 존재하고 그것들로부터 인간들은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당연히 의사결정 시에 모든 선택지를 고려할 수 없다. 사이먼의 말대로 만족하는 정도에서 선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약에 따라 만족하는 상태에서 결정하는 것이야말로 합리적인 결정 혹은 행동이다. 다만 그 결과가 좋은 쪽으로 도출되지 않았을 뿐이다.

 

 

 

6. 간섭주의의 재림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보장하면 빈부격차 발생이 필연적이기 때문에 국가나 사회가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그러나 간섭주의를 단순히 경제나 사회정의의 측면에서 정당화하는 것은 이제 식상한 레퍼토리가 되어버렸다. 간섭주의의 정당성에 대한 수많은 반박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국가냐 시장이냐 하는 해묵은 논쟁에 단골로 등장하는 논리이기 때문에 지겨워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간섭주의의 세가 약해진 틈을 넛지가 교묘하게 파고들었다. 간섭주의와는 궤를 달리하는 듯하면서 더욱 교묘해진 간섭이라 할 수 있겠다. 다르게 말하면 심리학으로 포장된 간섭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를 기본 경제시스템으로 하되 보충적으로 국가의 개입을 허용해야 함을 골자로 하는 간섭주의는 결국 사회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가령 시장경제 하에서 모든 물건이 자유롭게 거래되며 가격이 형성되는 가운데, 어떤 물품이 비싸서 국민들에게 부담을 준다고 판단한 국가가 그 물품의 시장가격보다 낮게 상한가격을 규정한다고 가정해보자. 가격의 상한보다 많은 비용을 들여 생산하던 공급자들은 그 시장을 떠나게 되고, 결국 공급이 적어진 해당 물품의 가격은 더욱 상승한다. 의도와는 반대로 비싸졌기 때문에 다시 그 물품의 생산요소 가격을 통제해 만회하려 한다. 하지만 똑같은 상황이 펼쳐지고 규제는 계속해서 증가한다. 그렇게 간섭주의는 미끄러운 비탈길을 타고 내려가 사회주의가 되는 것이다. 이는 넛지와 같이 심리학으로 포장된 간섭주의에도 유효하다.

 

'국가가 결정하겠다'를 바꿔 말하면 '정부의 소수 엘리트들이 정책을 선택하겠다'라는 말이 될 것이다. 넛지를 설정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국가에서 넛지를 시행한다면 정부의 소수 엘리트들이 주체가 될 것이다. 그들은 정말 바람직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할 수 있을까. 넛지에 나온 논리구조 그대로라면 그들도 사람이기에 당연히 비합리적이다. 그런데도 선택을 그들에게 맡길 것인가. 그렇다고 한다면 자가당착이다.

 

간섭주의는 세련된 방식으로 포장되어 재림할 것인가. 알고 싶다면 넛지와 행동경제학을 주시해 보는 쪽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 읽어볼 만한 기사 - www.hankyung.com/opinion/article/2017102944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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