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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Column)/Book

질서너머(Beyond Order) – 불안 속에 살고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진실된 위로

by J.Pro 2021.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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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당장의 내일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간다. 마음 편하게 휴식을 취하는 것도 사치가 되어버린 지금, 우리는 질서라는 불완전한 안정에 속아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위안하며 다를 바 없는 내일을 위한 불안정한 잠자리에 든다.

그러한 불안들에 지친 사람들은 안정된 삶을 찾는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된 질서로 얼룩진 유토피아에 불과하다. 수많은 20대들의 꿈이 공무원이라는 사실은 지금의 현실을 대변하는 쓸쓸하고도 참담한 질서의 민낯에 대한 폭로에 지나지 않는다. 안정된 삶, 그것은 매우 매력적으로 보이며 평온해 보인다. 하지만 모두가 바라보는 그런 안정된 상태는 근본적으로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불완전한 지식과 심리들이기에 안정화된 질서는 역설적으로 불안정하다.

그런데 왜 모두 그러한 질서의 상태에 얽매여 있는가? 사람의 본능은 결국 안전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머나먼 과거에는 안전을 잃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러한 과거가 시간에 의해 확장되어 가며 체계화되었고, 안정적인 삶은 곧 질서가 되어 버렸다. 그 질서를 넘어서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며 무모한 행동이라는 무의식이 뿌리 깊게 각인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러한 질서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본인이 추구하는 진실된 삶의 가치와 현실에 존재하는 안전의 영역 속에서의 가치가 상충되기 때문이다. 모두가 성공한 삶, 경제적 자유를 이룬 삶을 꿈꾼다. 하지만 그러한 진실된 가치, 값진 보물은 모두가 안주하는 질서 속에 있지 않다. 결국 질서를 넘지 못하면 나의 이상을 추구할 수 없다.


‘법칙 4. 남들이 책임을 방치한 곳에 기회가 숨어 있음을 인식하라’ 에선 이러한 시각에 대하여 불편한(대게 회피하는) 진실들을 적나라하게 이야기한다. 남들이 피하는 책임들은 어렵고 위험한 책임들이며 그러한 책임들은 혼돈 속에 방치되고 안갯속에 가려진다. 하지만 그러한 책임은 그 무엇보다 고귀한 가치를 지니고, 그런 책임을 짊어지었을 때 나라는 사람의 가치는 올라간다. 우리가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필요하다는 것이며, 그 필요한 것을 해내는 사람들은 인정과 권위를 거머쥐며 질서의 위계에서 상단에 위치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현실적인 제약들을 언급하며 그러한 책임을 지는 것을 외면한다. 그러한 제약들로 인해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불가능한 영역으로 치부해버리며 결국 스스로를 제약해버린다. 하지만 제약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제약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우리의 삶을 기초하는 필수적인 요소이자 가치 있는 부분으로 받아들일 때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이다. 제약을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가치 있는 삶이다. 그리고 우리들 또한 그렇게 느끼지만, 실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무엇이 그들을 속박하고 있는가?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실패에 대한 경험을 두려워한다. 실패를 경험하며 느꼈던 상실감과 그로 인해 찾아오는 공허감은 자신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한 감정적 충격을 주기도 한다. 모두 그런 경험을 겪어왔고 혹은 겪고 있으며 또 겪을 것이다. 실패는 누구에게나 두렵다. 실패로 인해 찾아오는 고통은 누구에게나 아프다. 하지만 그러한 아픔이 고착화되어 또 다른 시도를 막는 것은 잘못되었다. ‘법칙 9. 여전히 나를 괴롭히는 기억이 있다면 아주 자세하게 글로 써보라’ 에서는 이러한 트라우마를 다룬다. 누구나 잊고 싶은 과거와 실수들은 존재한다. "그것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스스로가 가해자가 된 것이며 그것은 결국 스스로를 배신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추구하는 도덕적 의무를 스스로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며, 피터슨은 이를 중장기적 게임을 올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트라우마는 과거의 사건이 과거에서 끝맺음을 짓지 못하고 현재와 미래에 까지 지속됨을 뜻한다. 끝을 내지 못한 일은 연속성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기억에 각인되는 현상을 겪게 되는데 이런 현상을 ‘자이가르닉 효과’라고 한다. 자이가르닉 효과를 종결짓기 위해서는 연속성을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그것을 마주 보고 이해해야만 한다. 이를 “지금 있는 곳을 알려면 지금까지의 모든 경험이 가급적 완전한 이야기 형태로 정리되어야 한다”라고 설명한다. 즉 내면 어딘가의 혼돈 속에 가려진 채로 존재하는 기억이 두려워 더욱 깊숙한 곳으로 숨기고 합리화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 그 상황을 제대로 인정하고 결론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 또한 우리가 마주하고 탐구해야 할 방향은 드러나있는 질서가 아닌 내면 깊숙이 숨어 있는(마주하기 두려운) 혼돈의 영역 속에 있다. 본인의 어두운 부분 또한 자신이다. 스스로의 어둠을 외면하며 그저 낙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한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 수 있다. 인간관계속에서 타인의 어두운 면을 보고 이해하며 그에 상응하기 위해선 스스로의 어둠을 인정하고 볼 수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깊은 인간관계의 시작이고 스스로의 가치를 올리는 시작이다.

인생은 고통스럽다. 이것은 불가피한 것이며 본인의 악의에 의해 그 고통은 더욱 가중된다. 하지만 작가는 “사람은 자신의 고통을 초월하고, 사회와 자연에 널린 사악함뿐 아니라 내면의 악의를 억제할 능력이 있다”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악의를 멀리하고 선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 고통은 불가피하기에 더 큰 고통을 받지 않기 위해서다. 우리는 그 어둠을 피하고 외면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어둠을 알아야 빛을 인지할 수 있고 그곳을 향해야 함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삶이 고통스러운 비극이라 할지라도 이를 원망하지 마라. “비극 앞에서 용기와 고결함을 보이는 것은 바로 그 상황에서 사람들이 흔히 정당화하는 파괴적이고 허무주의적인 냉소와 정반대로 나아간다는 의미다” 비극이라는 어둠이 있기에 삶의 가치는 더욱 밝은 빛이 되어 우리를 이끌 수 있는 것이다.‘법칙 12. 고통스러울지라도 감사하라’를 끝으로 작가는 우리에게 진정한 용기를 가르친다.

모든 고통을 감내하는 용기를 포괄하는 것은 사랑이며 그 사랑은 결국 기적을 만들어 내고 그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심연과 어둠의 해독제를 발견할 수 있다.

l 마치며

조던 피터슨

질서너머는 복잡한 인생을 살아가는 스킬들을 가르쳐주는 단순하고 흔한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인간의 본질과 진실된 삶에 대한 고찰을 할 수 있도록 나를 질서의 경계선으로 이끌어주는 인도자의 역할을 한다. 열심히 사는 방법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 대신, 왜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 왜 책임을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근본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던 피터슨의 매력은 여기에서 나온다. 우리는 이미 열심히 살아야 한단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문제는 도대체 왜 그래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외부적인 자극에 휘둘리고, 장기적인 목표를 올바르게 세우지 못하며, 그저 오늘만 살아가기에 바쁘다. 하지만 피터슨은 냉철한 논리와 압도적인 지식의 데이터 베이스로 이를 설명하고 설득시킨다. 하지만 그 냉철함 속에 숨어있는 진실된 목소리는 독자로 하여금 깊은 위로를 느끼게 하고, 진정한 마음의 안식을 찾도록 이끌어준다.

소설을 읽듯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는 할 수 없다. 내용을 이해함에 있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기에 손쉽게 페이지를 넘길 수 있는 책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찾아오는 생각의 확장과 내면의 안정은 쉽게 경험할 수 없는 독서너머의 감동을 준다. 쉽게 읽히는 책은 그만큼 쉽게 사라진다. 생각하고 기록하며 천천히 읽게 되는 어려운 책은 그에 비례한 고귀한 가치를 가지고, 그것을 탐구하고 추구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가져야 할 삶의 책임이자 의무다.

질서너머(Beyond Order)- 조던 피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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