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약
주네브 공화국에 바친다
주네브는 왕 혹은 독재자의 통치를 받지 않는 ‘공화국’이다. 공화국은 백성이 아닌 시민들이 구성하는 체제로서, 시민들을 통해 조직한 법을 통치 구조의 핵심으로 한다. 루소는 그런 주네브 시민들에게 헌사를 바치며 국가와 인간에 대한 바람과 경계를 동시에 역설한다. “주권자와 국민이 같은 이해를 가진 나라”이면서 “입법권을 모든 시민이 공유하는” 공화국이 진정한 공화국이며, 노예적 생활에 익숙해져 방종을 자유로 착각하는 인간들이 이끄는 원칙 없는 국가가 되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문
서문은 1,2부에서 다룰 주제들을 개괄한다. 즉, 인간과 인간이 만든 집단 구조에 대한 몰이해를 지적하고 있다. 기존의 자연인과 자연법에 대한 이야기들은 자연에 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루소에 따르면, 그 주장들은 역사적 과정을 거치며 쌓인 인간의 정념을 기반으로 추리했기 때문에 자연 상태의 인간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루소는 인간의 최초 움직임으로 자기보존과 연민의 정을 강조한다. 이는 기성학자들이 내세운 이성 중심의 추리들과 대척하는 주장이다.
1부
1부는 인간의 자연 상태를 주제로 한다. 루소의 주장을 요약하면, 인간은 본래 평등했고 독립적인 존재였다. 함께 모여 살지 않았기에 자유로웠고 각자의 능력에서 별다른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남과 자신을 비교할 잣대들은, 예를 들면 추상성과 언어, 생성되지 않았다. 자연인들에게는 축적된 지식이 없었다. 다만 자기향상 능력이 있었다. 이 능력이 다른 인간들과 교류를 하는 등의 우연적 사건들과 결합하여 결국 자연에 반(反)하는 지식들을 탄생시켰다. 관념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식과 관념이 만들어지면서 인간은 곧 악덕해졌고, 곧 불평등사회의 기원이 된다.
2부
2부는 인간의 공동체 형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루소는 특히 우연적 사건들에 의해 집단생활을 시작한 인간 사이에 자연과는 거리가 먼 사유(私有) 관념의 발생을 강조한다. 또한 관계에 대한 지각으로 비교와 자존심이 만들어져 불행의 시초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이와 같은 관념들이 쌓여 농업 등으로 발전하여 끝내는 부자와 빈자가 생겨났다. 경제적 불평등의 발생은 바로 정치·사회적 불평등으로 이어졌고, 부자들은 감언이설로 빈자들을 꾀어냈다. 그것이 당대의 사회구조를 만들었다.
2. 에세이 : 루소식 역사관과 경제관에 대한 반박
루소의 자유와 평등에 대한 역설은 당시 억압받던 대다수의 사람들을 설득할 만한 힘이 있었다. 그의 사상은 짧게는 프랑스혁명에, 길게는 현대 민주공화국의 사상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의 주장들이 모두 옳았던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그의 자유에 관한 논의에는 동의하지만 평등과 관련된 견해에는 동의하지 못한다.
루소의 평등관은 A부터 Z까지 유기적으로 구조화되어있다. 인간은 애초에 평등했다는 전제를 기저에 깔고 역사 혹은 당대의 과학적 근거를 조금씩 끌어다 살을 붙여 거대한 관념의 성을 만들었다. 하지만 ‘인간은 본래 평등하다’라는 전제부터 틀렸다.
그의 논의에 따르면, 태초 인간은 사회를 꾸려 생활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의식주를 해결한다. 그래서 비교와 경쟁의 개념이 없다. 또한 신체적 불평등은 있지만 그 차이는 미미하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루소는 전제들의 근거를 내세우지 못한다. 그저 ‘가정’할 뿐인 것이다. 사실 자연 상태의 인간에게 신체적 불평등은 존재하고 그 차이도 미미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불평등기원론』의 논의처럼 가설적인 상황을 가정해보자. 자연인 A와 B는 서로 다른 지역에 살고 있다. 신체가 튼튼한 자연인 A는 8시간 일해서 3마리의 닭을 잡는다. 반면에 상대적으로 허약한 자연인 B는 8시간 일해서 2마리의 닭을 잡는다. 이때 닭 한 마리는 하루분의 양식이고 도구는 없다. 재빠르고 때로는 날아서 도망가는 야생의 닭을 잡기 위해서 같은 노동의 양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수확량이 다르다.
그들은 따로 살고 있기 때문에 비교의 개념이 없지만, 실상의 차이 혹은 불평등은 존재한다. 그리고 A와 B 사이에 하루분의 양식이 차이가 나는데, 이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자연환경에서 꽤나 큰 차이였을 것이다. 비가 온다든지 벌레가 꼬이는 등의 이유로 양식을 먹지 못한다면 B는 하루를 굶어야 할 수도 있다. 결국 생존과 관련된 문제이기에 그 차이가 미미하다고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본래 평등하다는 가정 위에 세워진 일련의 주장들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평등해야 한다’고 외치기 위해서 원래 평등했다라고 말하는 것은 분명한 잘못이다.
다만 “파란만장한 자유를 선택”하는 인간에 대한 설명에는 동의한다. 인간은 스스로를 속박하는 굴레에 대항하여 자유를 찾아왔다. 하지만, 루소처럼 인간이 집단생활을 시작하며 자유가 억압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연인들은 자연으로부터 속박되는 환경에서 벗어나 공동체를 꾸렸을 것이다. 각자가 닭을 잡기 보다는 힘을 모아 더 큰 짐승을 사냥했을 것이다. 그것은 곧 자연으로부터의 자유이지 않았을까.
루소에게서 얻을 수 있는 통찰은 사회·국가적 힘에 대한 경계이다. 국가의 행정은 국가적 힘의 작용이고, 강제성을 띤다. 이 강력한 힘이 마구잡이로 쓰인다면, 힘이 작용하는 범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는다. 루소가 목격했던 전제왕권의 부작용도 그런 종류의 폭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행정이 무엇에, 얼마만큼 작용할지가 중요한 것이다. 한 국가의 행정은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고, 법과 기회 같이 평등해야 하는 부분에서는 그 균형이 지켜질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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