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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Column)/Book

미제스의 [자유주의] : 에세이

by 방구석베짱이 2021.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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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귀신이 만들어지는 상황

다들 한 번쯤 귀신이 무서워 희한한 행동을 해본 과거가 있지 싶다. 귀신이 쳐다보고 있을 것 같아서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눈을 부릅뜨고 머리를 감는다거나 집에 혼자 있을 때 허공에다 대고 거기 있는 거 다 안다. 나와라!” 외친다든지 하는, 돌이켜보면 깜찍한 과거 말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귀신이 있다고 상상하게 되는 상황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시야가 제한된다. 둘째, 통제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샴푸 혹은 안방의 사각(死角)이 시야를 가리게 되면, 가뜩이나 힘이 약한 아이는 무언가에 대응하기 힘들어진다. 그런 상황을 맞닥뜨리면 불안감을 느낀다. 세상물정 모르는 미숙한 아이는 상황을 직시하는 대신 무의식적으로 귀신을 만들어낸다. 그러고는 귀신이 있을까 공포에 떤다. 귀신을 원인으로 두고 자신의 불안감을 설명하려 하는 것이다.

 

알고 보면 성인들도 다를 바 없다. 여전히 통제가 되지 않는 미지의 무언가에 공포를 느끼고 귀신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만들어낸 귀신에는 각종 무속신앙, 음모론과 루머, 뒤틀린 사상들이 있다. 다만 귀신들을 숭배하게 된다는 점은 어릴 때와 다르다. 도저히 이해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세상일을 환상(illusion)을 통해 간결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귀신의 창궐

삶의 각 영역에서 무수한 귀신들이 만들어지듯, 정치·경제 영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정치·경제 영역에서 사람들을 그토록 불안하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는가. 17세기 전후로 나타난 시장경제 사회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개념이었을 것이다. 내 삶에 영향을 주지만 보이지 않아서 꺾어버릴 수도 없는 손이라니. 귀신을 만들어내기에 적합한 조건을 모두 갖췄다. ‘자유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이다. 각자가 나름의 의지대로 움직이면 개개인이 세상을 파악하고 관리하기가 어려워지기 마련이기에 본능적으로 불안해진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시야를 제한하고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해 본능적 불안을 느낀다. 거기에다 시장경제에 부속되는 경쟁 같은 개념들은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어두침침해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겠는데 한 사람씩 나가떨어진다고?”하며 세상을 공포영화처럼 바라보게 된다. 이내 혼비백산한다. 혼란 속에서 판단력이 흐려지고 이런저런 오해가 쌓이기 시작한다. 하나둘씩 귀신이 만들어진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원귀(冤鬼). 발생과정은 이렇다. 삶이 팍팍하기 그지없는 대다수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자본가·기업가들이 편안한 생활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니 의심을 품는다. 자유, 이윤, 경쟁 모두 자본가가 일반대중 착취를 위해 생성한 시스템이라 여긴다. 소수 자본가들의 부 축적을 위한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여 자본가들을 타도하고 싶어 한다. 대신 공동체 전체를 아울러 관리하는 회의나 정부 등에 재산을 귀속시키고 구성원들이 짜놓은 계획에 따라 사회가 운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무지와 불안이 분노로 발전한 케이스다.

 

민족주의와 보호주의는 지박령(地縛靈)이다. 자신이 속해 있는 특정한 곳을 사수하려 애쓴다. 이 지박령의 숭배자들은 본인들이 확보했다고 여기는 것을 절대 빼앗기려 하지 않는다. 확보된 무언가가 자신의 손을 떠나 다른 곳으로 유출되는 일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 눈에 자유로운 교역은 확보된 무언가를 뺏고 빼앗기는 과정이다. 그래서 같은 역사·언어를 공유하는 사람들만 챙기거나 자국 및 자국의 산업을 우선시한다. 공통적으로 우리사이에 확실한 경계를 긋는다. 결국 특정 공동체에서 우리끼리 잘 살아보자 주의가 되어버리고 만다. 이는 자유주의 및 자본주의에 대한 불안감이 극도로 커진 케이스다.

 

제국주의는 허주(虛主). 민족주의와 보호주의를 토대로 남을 침략해 조종하려 한다. 민족주의와 보호주의를 기반으로 끼리끼리 모여 살면, 생산할 수 있는 파이가 작다. 그렇기 때문에 힘이 센 국가가 남의 것을 탐내기 시작한다. 이후에 자원이 풍부한 곳을 식민지로 만들어 자신들의 파이를 키우고자 한다. 식민지 국가 국민들은 스스로의 의지 대신 점령국의 자의(恣意)에 지배당한다. 힘의 원리에 대한 숭배가 자유주의 및 자본주의의 원리를 철저히 짓밟게 되는 케이스다.

 

간섭주의는 잡귀(雜鬼). 여기저기서 불쑥 나타나고, 이것저것 뒤섞여 있다. 기본적으로는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와 궤를 같이 한다. 그렇다고 시장경제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럴 때는 정부가 직접 나서서 규제를 해야지의 태도를 견지한다. 시장경제에 대한 무지와 불안이 불신으로 발전해 국가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케이스다.

 

퇴마록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사람들은 그런 귀신놀음에 심하게 빠져있었다. 그런 혼돈 속에서 꿋꿋하게 자유주의를 외친 사람이 미제스였다. 미제스의 저서 자유주의1927년에 처음 출간되었다. 민족주의가 나치와 같은 전체주의로 진화해 갈 때, 사회주의 국가가 막 출범하고 간섭주의가 발전하던 시점에, 제국주의가 여전히 남아있던 당시에 나온 것이다. 미제스는 귀신들에 속지 말라며 꿋꿋하게 자유주의의 가치를 알렸다.

 

자유주의는 인간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쳐 만들어낸 귀신들을 자연스럽게 몰아낼 수 있게 해준다. 그런 점에서 미제스의 자유주의는 일종의 퇴마록이다. 초능력이나 신의 힘을 빌리지는 않는다. 다만 지극히 현실적이고 논리적으로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해 밝혀준다. 현대 선진사회의 기반이 되는 자유와 시장경제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미제스에 따르면, 자유주의의 지향점은 인간사회 전체의 물질적 이익을 증진하는 것이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사회를 이루어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잘 살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증진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간 간에 협동이 필요하다. 이러한 협동이 분업에 기초하여 원활하게 발생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 시스템을 내포하고 있는 사상은 자유주의뿐이라고 미제스는 역설한다.

 

미제스가 자유주의에서 역설한 자유주의 사회시스템의 토대는 사유재산·자유·평화이다. 인간사회는 분업에 따른 협업을 할 때 노동·자본·토지라는 생산요소를 투입해 생산성을 증대하려 한다. 이때 생산성 증대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노예적 상태에 있으면 안 된다. 노예들은 자기의 노력을 최대한으로 투입할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자유인이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노동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쪽이 훨씬 생산적이다. 그를 위해서 재산 혹은 생산수단(요소)을 개개인이 소유할 수 있도록 한다. 사유재산은 자유를 위한 물적 토대인 것이다. 이러한 사유재산과 자유를 남에게 빼앗겨 사회의 협업이 끊기는 일을 막기 위해 평화가 필요하다. 세 가지 토대는 분업에 따른 협업을 가능케 하여 사회에 부가 축적되도록 한다. 축적된 부는 각자가 본인만의 내면적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외형적 조건이 된다.

 

자유주의 사회시스템의 토대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는 법 앞의 평등·민주주의·국가 및 정부가 있다. 사람들마다 능력과 재능 등이 다르기 때문에 현실에서 모두가 평등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으로써 자유와 재산 그리고 평화를 각자에게 평등하게 보장하는 것은 어떤 이가 누군가에게 예속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함이다. 민주주의는 정치적 조정이 폭력적 방법에 의해 수행되는 것을 막는 수단이다. 민주주의는 힘의 원리에 따르기보다 설득을 통한 다수의 동의를 원칙으로 삼는다. 누군가의 생존을 함부로 위협하는 행위를 막고 평화를 지키는 수단인 것이다. 국가 및 정부는 이러한 사회시스템의 토대와 수단을 수호하는 기관이다. 사회의 존속에 해를 끼치면 강제력을 사용하는 역할을 맡는다. 다만 국가 및 정부는 강제력을 이용해 스스로가 자유주의 시스템의 토대와 수단을 파괴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이러한 자유주의의 토대와 수단은 자연스레 자본주의를 동반한다. 자유주의 하에서 개별 자유인들은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무언가를 생산해낸다. 이를 통해 사회에서 각자의 역할을 맡게 된다. 따라서 분업을 하게 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자신의 생산물과 교환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시장이 만들어지며, 개별인은 생산자이면서도 소비자로서 시장에 참여한다. 시장에서의 수요와 공급이 일치되는 지점에서 가격이 결정된다. 이때 교환과 거래의 편의를 위해 화폐가 통용된다. 화폐를 사용하게 되면서 통일적 기준이 생김에 따라 경제적 계산이 가능해진다. 이와 같은 체제가 미제스가 설명한 자본주의이다.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는 사실에 의해 도출된 논리적이고 현실적인 사상이다. 무수한 역사적 경험을 통해 알게 된 현실 상황에서의 인간행동을 기초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귀신같은 사상들과 다른 지점이다. 귀신들이 땅에 발을 딛지 않고 둥둥 떠다니듯, 귀신 사상들 역시 비현실적이다. 자유주의라는 퇴마록에서 미제스는 사회주의 등의 비현실성을 정확히 지적했다.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각자가 부를 축적하는 대신 재산이 정부의 소유가 된다. 이로써 자유를 위한 물적 토대가 제거된다. 또한 정부가 계획에 따라 생산수단을 관리하므로 시장에서 생산수단을 교환할 수 없다. 특히 기계설비와 같은 자본재의 교환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생산에 필요한 생산수단과 자원의 효율적 조합을 알 수 없게 된다. 이에 따라 화폐적 계산이 불가능해진다. 그렇기에 무엇을 얼마나 생산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사유재산이라는 주춧돌이 없으니 사회가 우르르 무너지는 것이다.

 

보호주의와 민족주의는 자유주의에 비해서 비생산적이다. 국제적인 분업을 통해 인류 전체가 협업하는 대신 국경과 민족을 기준으로 그어놓은 인위적 경계 안에서 자급자족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한 타인의 자유를 자신들의 자유와 동등하게 여기지 않아 평화를 위협하며, 경계를 기준으로 규제와 통제를 함에 따라 정부의 힘이 강해진다. 따라서 시장의 크기가 작아질 수밖에 없다. 보호주의와 민족주의의 확대판인 제국주의도 전부 이에 해당된다.

 

시장에 대한 불신을 내비치는 간섭주의는 부와 소득의 불균형, 이윤의 과잉, 독과점, 경쟁의 무자비함을 이유로 정부의 간섭을 정당화한다. 미제스에 따르면 그 이유들은 어불성설이다. 가장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혁신적 공급자가 이윤을 가져가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대적 불균형은 오히려 혁신가가 되게 하는 유인이다. 또한 한 시장에서 나가떨어져도 수많은 다른 시장에 진입할 기회가 있다.

 

여전히 남아있는 망령들의 잔재

미제스는 자유주의를 통해 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이념 및 체제에 대한 무지와 오해를 청산하는 데 힘썼다. 그에 따라 불안과 불신, 분노가 제거되었다. 동시에 귀신들의 종말을 예측했다. 귀신들은 정확히 미제스가 지적한 이유들에 의해 최후를 맞았다. 자유주의의 승리였다.

 

그러나 여전히 망령들의 잔재는 남아있다. 선의를 가지고 정부의 개입을 호소하지만 자세히 보면 특정집단의 이익을 옹호하는 정당들의 공약이 그렇고, 경쟁이 피로사회를 만들어낸다는 반자본주의적 심리가 그렇다. 국제적 연합들은 아직 자기 방어적이다. 귀신같은 사상들의 부스러기가 모여 베네수엘라 같은 나라를 망쳐버리기도 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자유를 지키려면 올바른 세계관을 배우고 익혀 엉터리 사상에 홀린 사람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그러니 우리가 만들어낸 귀신이 되려 우리를 괴롭힐 때마다 자유주의라는 퇴마록을 펼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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