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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Column)/경제

사랑의 심리학, 결혼의 경제학 3

by 방구석베짱이 2022.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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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간극과 한국의 가족

우리는 한국이 '압축성장'이라고 할 정도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과 정치제도의 선진화를 이뤄왔다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 세계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보편적으로 이 정도의 성장은 대략 2~300년을 거쳐 진행되는데, 한국은 고작 70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해낸 것이다.

 

그런 만큼 구세대와 신세대 간 가치관·세계관·지식 및 기술은 판이하게 다르다. 제대로 닦여지지도 않은 흙바닥에 소달구지 타고 오다니던 사람들과 비행기 타고 해외여행 가는 게 익숙한 사람들 간의 문화적 간극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가족'에 대한 관점 역시 그렇다. (1)시부모 봉양과 제사를 당연시 하는 세대가 있고, (2)남성과 여성이 같이 사회적 진출을 해 경제활동에 참여했음에도 여성의 가사노동 부담이 줄어들지 않았던 세대가 있으며, (3)가족의 형태가 자유로웠으면 하는 혹은 자신의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에 딱히 신경을 안 쓰는 세대가 있다.

 

(3)에 해당되는 현세대 2030들은 한 가정 내에 있는 (1), (2)에 해당되는 가족들의 '가족'에 대한 관점을 수용하도록 압박받는다. 압박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작용한다. 양성(兩性) 모두 현실의 이성(異性) 및 자신이 원하는 역할과 구세대에 속하는 가족·관습이 요구하는 역할 사이에서 갈등한다. "세상이 변한 건 알지만, 그래도 가족이야"와 "가족이 소중한 건 아는데, 그런 시대가 아니라니까"의 싸움이다.

 

아직까지는 이 과정에서 구세대들의 영향력이 꽤 크게 작용하는데, 대가족·철저한 여성족외혼을 경험한 구세대들은 남성 쪽이 이전과 같은 책임을 져주기를 바라며 입김을 불어넣는다. 물론 여성 쪽에도 유교 스타일의 여성상을 요구한다. 다만 남성들에게 요구가 더 강하다.

 

*현대에 살면서 한국 특유의 전근대적(유교적) 가족 문화에 상처받은 적이 있던 남녀는, 또 다시 이런 압박을 받게 되면 상처를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 등을 가지고 결혼을 포기하기도 한다.

 

 

 

연애/결혼

위의 가족 간 문화적 간극을 포함한 이전의 설명들에 덧붙여, '설거지론' 주장의 요지는 '현 2030여성들은 이성 대한 태도와 가치관이 연애 시기와 결혼에 근접한 시기에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결혼 전에는 요부(妖婦), 결혼 직전부터는 요조숙녀' 프레임이다. 연애 상대는 막 만나거나 외양을 보고 만나면서, 결혼할 때가 되면 연애 상대로는 거들떠도 안 보던 사람을 선택하려 한다는 점이 요지다.

 

남성이나 여성이나 여러 상대와 섹스를 해 임신을 하는, 유전자 뒤섞기(shuffling)가 유전자 보존에 유리하다. 한 상대와 섹스를 해 낳은 아이는 유전자가 엇비슷해서 질병 등의 위기를 맞는 경우 다 함께 골로 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에 설명한 MPI(배우자 남성의 여성과 아이에 대한 투자) 문제 때문에 여러 상대와 섹스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소위 '설거지론'자들이 얘기하는 2030여성들의 '문란함'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다들 알다시피 연애 중에 섹스를 한다고 해서 결혼까지 이어지는 시대가 아니다. 섹스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임신으로 귀결되는 시대도 아니다. 결혼 전 다수의 상대자와 연애를 해보는 행위는 인간들의 지적 예민성, 감수성이 높아짐에 따라 자신들과 맞는 상대를 아주 디테일하게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인간의 뇌는 단순히 유전자 대물림이나 보존·번식만을 위해 진화하지 않았다. 다양한 이유에서 쾌락에 민감하도록 진화했는데, 자유연애-프리섹스는 쾌락을 높여줄 수 있는 수단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여성들의 자유연애-프리섹스는 남성의 입장에서 한편으로는 이해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왜냐고? 여성들이 계속해서 남성 곁에 있어줄 것이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캐묻지 않는 이상(물어봐도 쉽게 대답을 듣기는 어렵다) 과거에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상대를 만났으며, 과거에 만났던 상대를 조금이나마 마음에 두고 있지는 않은지 등을 알 수 없기에 분명히 부계 불확실성을 포함한 심리적 불안감이 높아진다.

 

거기에 더해 여성들이 연애상대와 결혼상대를 고를 때 기준(혹은 태도)이 다르다는 걸 남성들이 알게 되면, 불안감은 일종의 거부감이나 분노로 변한다. 

 

쾌락없는 책임 VS 책임없는 쾌락

현대사회의 여성에게 정절을 강요할 수는 없다. 엄연히 자유로운 인격체이므로, 인생의 파트너를 구하는 문제 역시 그들의 자유에 맡길 일이다. 하지만 '설거지론'자들은 '왜 남성에게는 이중적 역할을 요구하면서 여성들은 자신의 편의대로 하려 하느냐', '왜 책임없는 쾌락만을 추구하는 속물근성만 가졌냐'라고 반문한다. 

 

이런 질문들과 전반적인 설거지론자들의 주장에서 엿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첫째, 여성들의 물질주의를 비롯한 총체적 마인드셋을 탓하고 있다. 둘째, 연애와 결혼을 경제적 측면뿐만이 아니라 심리적, 정신적 측면에서 바라보고 싶어한다. 셋째, 심리적으로 바라는 이상과 경제적 현실의 괴리가 불만을 생성하게 된다.

 

주장 속에서 엿볼 수 있는 점은 '남자는 결혼을 심리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려 했다'는 것이다. 여자들이 경제적 측면만으로 결혼을 대한다고 보면서, 역으로 '우리도 이제는 모든 가치를 하나하나 경제적 계산을 통해 따져보겠다'고 하면서 나온 것이 소위 '설거지론'이다. 당신들은 책임없는 쾌락을 누렸으니, 더이상 쾌락없는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이 주요한 주장이다.

 

 

 

설거지론의 기원 : 한국사회의 남녀갈등

설거지론은 한 순간 급작스럽게 등장한 이슈가 아니다. 논의의 시발점은 21세기에 접어들어서부터 시작된 한국사회의 남녀갈등에 있다. 언론이나 정치권에서는 마치 남녀갈등 혹은 페미니즘이 급물살을 타고 2015년을 전후로 등장했다고 알고 있지만, 착각이다. 2000년대 초반의 된장녀에서부터 김치녀·한남에 이르기까지 대략 20여년 동안 진행되어 왔다. 인터넷에서 시작된 밈(meme)'된장녀'와 최근의 '김치녀'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한국여성을 비하한다고 여겨지는 단어들은 본질적으로 '모순된 가치관을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꼬집기 위해 만들어졌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취업해서 돈은 같이 벌고, 2년의 군대 의무복무에서 제외된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사회진출이 빠름에도 불구하고 왜 데이트비용이나 결혼비용을 남성들이 더 부담해야 되느냐", "왜 남자만 양보해야 하냐"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인터넷을 통해 전파되면서, 무수한 잡설이 덧붙여져 혐오로 발전했다. 글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남성들의 기저에 깔린 심리와 경제학적 설명이므로 그런 잡설들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여하튼 남성들의 항의에 대한 반대급부로 페미니즘이 확산되면서 탄생한 단어가 '한남'이다. (물론 페미니즘의 흐름 역시 이전부터 있어 왔다.) '한국 남자'들은 여성들에게 아주 무례하게 대하지 않았느냐 하는 뜻을 가지고 탄생했다. 가령 "그렇게 예쁜 여자를 원하면서, 막상 성형을 하면 성괴라고 놀리는 꼴은 뭐냐", "성형이 사회에 만연한 것도 남성들의 수요가 있기 때문 아니냐" 하는 반발이다. 여기서 더 급진적으로 나아가면 "한국사회에는 가부장적 질서로 인한 남성들의 권위의식과 사회적 차별이 존재하며, 따라서 남성들이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한국만의 아주 기이하고 기괴한 사상이 되는 것이다.

 

물질주의와 가족의 형해화

그러나 남녀갈등이 설거지론이 대두하게 된 근본적 원인은 아니다. 남녀갈등과 남녀갈등에서 비롯된 모든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 되는 것은 결국 유물론적 물질만능주의이다.

 

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현재 한국에서는 결혼 시 집을 장만할 때 대개 건실한 아파트를 가지는 걸 전제로 한다. 그런데 기껏해야 30대 초중반에 불과하고 근무연수가 10년도 채 안 될 사람들이 집을 '장만'해서 결혼하는 문화는 외국에서 일반적이지 않다. 미국 월스트릿 금융계에서 일하는 이들도 롱아일랜드 베드타운의 허름한 집에서 월세살이부터 시작한다. 

 

대출을 활용한다고 하더라도 적게는 몇 천만원에서 많게는 몇 억원이 되는 대출금의 이자 부담이 결코 월세보다 작다고 할 수 없다. 물론 이렇게까지 무리하게 집을 장만하는 이유는 있다. 타인에게 초라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물질주의에서 비롯되는 계급 나누기 문화가 작동하는 것이다. 즉, 남녀가 서로 비난하며 싸울 문제가 아니라 공통으로 해결해야 할 집단적 심리의 문제인 것이다.

 

과학의 발달과 복지국가로의 이행(사회주의 친화적 국가의 이혼율은 굉장히 높음. ex-소비에트 연방)이 가족 공동체를 점점 소규모화고 있는 와중에, 한국인들 스스로가 물질주의 심리를 체화하고 그런 문화적 분위기를 만들어 내면서 가족의 형해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설거지론을 남녀갈등의 부산물로만 이해하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지닌 문제의 총화로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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