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서정가제의 역사 및 도입
- 도서정가제는 2003년 처음 시행되어 4차례의 개정을 거쳐 현행 제도에 이르렀다.
- 도서정가제가 규제하는 내용은 대상이 되는 책의 종류 범위, 간행 기간, 할인 범위에 관한 것이다.
- 2014년 법 개정으로 인하여 현재 대상이 되는 책의 범위는 실용서 및 초등 학습참고서를 포함한 모든 도서이다.
- 18개월 이내 및 경과 간행물 전부이고, 가격할인 10%이내에 간접할인 5%까지 더하여 총 15%내에서만 할인이 가능.
2. 도서정가제의 취지
- 도서정가제의 애초 취지는 출판물의 과도한 가격경쟁을 지양 및 지역 내 중소서점 활성화였다.
- 작가 및 저자의 수익을 보장하자는 취지도 있었다.
- 이러한 규제제도를 옹호하고 나선 것은 특히 지역의 중소서점주들이 만든 한국서점조합연합회 등의 이익집단들
- 찬성하는 쪽은 도서를 포함한 출판은 일반 공산품과 달리 보존가치가 있는 문화의 산실이라는 논거를 세웠다.
- 공공도서관의 운영, 공교육에서의 독서교육, 도서에 대한 부가가치세의 면제 등이 준공공재적 성격이 있음을 보여주는 근거라고 생각했다.
- 또한 온라인서점 등의 과도한 할인으로 인한 오프라인서점들의 폐업도 근거로 하였다.
- 도서정가제라는 규제는 결국 시장실패를 교정하겠다는 취지를 가지고 도입된 것이었다.
- 시장실패라는 것은 책의 가격을 규제하지 않음으로써 온라인 및 대형 오프라인 서점의 시장점유율이 증가하여 중소서점들이 폐업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 즉, 가격을 통제하지 않기 때문에 일종의 독과점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3. 도서정가제 시행과 규제의 실패
- 규제의 형성에 특히 많은 관여를 한 것은 한국서점조합연합회, 한국출판인회의 등 도서정가제를 옹호하는 쪽이었다.
- 규제의 형성 측면을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 첫째는 윌슨의 규제정치이론이다.
감지된 편익 | |||
감지된 비용 | 넓음 | 좁음 | |
넓음 | 대중정치 | 고객정치 | |
좁음 | 기업가정치 | 이익집단정치 |
- 윌슨의 규제정치이론에서 감지된 비용은 불특정 다수에게 분산되어 있으나 편익은 동질적 소수에게 귀속되는 상황을 고객정치 상황이라고 한다.
- 도서정가제도 이에 딱 맞아떨어지는데, 책 할인이 금지됨에 따라 가격이 상승하게 되고 책을 구매할 소비자들은 광범위하지만 가격 상승으로 인해 상당한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예측되었던 대상은 중소서점들이었다.
- 또한 고객정치 상황의 특성으로 규제의 수혜자는 잘 조직되어 있어서 규제기관의 정책결정 및 집행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측면이 있는데, 도서정가제의 수혜자들 역시 비록 단체들이 여럿이긴 하지만 분명히 조직을 가지고 행동했다.
- 고객정치 상황의 다른 특성으로는 시장경쟁을 제한하는 것이 품질 및 서비스의 수준을 높게 유지하고 무책임한 기업행위를 예방하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한다. 도서정가제 옹호론자들 역시 이러한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 둘째는 스티글러의 정부규제이론이다.
- 스티글러는 이익집단 정치이론의 관점에서 정부의 규제활동을 설명하였다.
- 그는 정부규제의 수요자는 정부규제로부터 편익을 얻을 것으로 기대하는 이익집단이라고 하였다.
- 또한 잘 조직화된 효율적 이익집단이 성공적인 수요자가 될 수 있으며, 그들은 편익의 대가로 투표 등을 통해 규제의 공급자들에게 보상과 유인을 제공한다고 하였다.
- 법안을 상정한 것이 2014 지방선거 전이었음을 감안하면, 당시 정부 및 정치인들은 도서정가제 옹호론자들과의 갈등을 회피하고 싶은 유인이 존재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 이는 규제기관이 피규제자들에게 포획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규제기관의 포획이론)
- 옹호론자들은 공익적 가치를 내세우며 규제를 지지하였지만 결국 사익추구와 연결되는 것이었다.
- 과연 도서정가제는 성공한 규제가 되었을까. 그렇지 않다.
- 이는 도서 및 출판업계의 계속되는 불황과 소비자의 변화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 현행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2년간 대형 서점을 제외한 오프라인 서점에서 사용한 금액은 개정전보다 0.6% 감소한 2953억 원이었다. 이용건수도 2015년에는 6.2% 증가하였다가 2016년에는 0.3%증가에 그쳐 미미한 성적을 거두었다.
- 오프라인 대형서점의 경우에는 개정 후 2년간 이용금액과 이용건수 모두 감소하였다.
- 반면에 규제의 원인자로 지목되었던 온라인서점의 경우 도서정가제 개정 후 2년(2014년 12월~2016년 11월) 간 사용된 금액은 총 1387억 원으로 제도 개정 전 2년 동안 사용된 금액(1266억 원)보다 9.6% 증가하였다.
- 규제의 목적이 유명무실해 진 것이다.
- 오프라인 서점의 불황은 2018년에까지 이어져 2017년 상반기에 비해 2018년 상반기에 매출액이 감소한 사업체가 76.3%에 달했다.
-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에게도 부정적 변화가 있었다.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2015년에 1인의 1년 평균 독서량이 9.6권이었음에 반해 2017년에는 8.7권으로 하락하였다.
- 물론 이것이 도서정가제만의 영향은 아니다. 그러나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책값이 비싸다고 느낀 비율이 58.9%, 온라인 서점 이용이 증가하였다는 비율이 48.5%, 책을 빌려보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비율이 52.0%임을 감안하면 도서정가제의 영향이 상당함을 짐작할 수 있다.
- 또한 위에서 언급한 오프라인 서점들의 매출 감소는 곧 소비자들의 구매 감소를 의미한다. 오히려 소비자들이 무료배송과 포인트 적립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온라인서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4. 규제실패의 원인과 결과
- 규제실패의 원인은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 첫째로는 도서정가제의 규제가 특정 이익집단의 의견에 포획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 2003년 도서정가제가 시행될 때, 출판 및 오프라인 서점업계와 그와 관련된 문화관광부, 다수의 정치인들만 찬성했다.
- 소비자, 공정위, 온·오프 경영 대형서점, 온라인 업계는 반대이거나 적어도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
- 이러한 구도는 2014년까지 유지되었다.
- 도서정가제 찬성 측은 그러한 규제가 자신들의 이익이 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시행 이후에는 전혀 이득이 되지 않았다.
- 다음으로 가격규제에 따른 부작용의 발생 때문에 실패하였다고 할 수 있다.
- 공급자가 책정한 각 책마다의 가격에서 할인을 제한함으로써 일종의 최저가격을 형성한 것이다.
- 그러나 직접적 가격규제가 결국 소비를 위축시켰고, 시장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는 가격보다 최저가격을 높게 잡기 때문에 수요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 규제는 소비자뿐만 아니라 공급자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 현행 정가제 시행 이전에는 오프라인 서점의 경우 출판사 및 도매사로부터 사들인 책이 팔리지 않고 재고로 남을 경우 보관비용 등의 부가적 비용이 발생하는데, 이를 처리하기 위해 가격을 낮게 책정해 판매함으로써 재고를 줄일 수 있었다. - 그러나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이러한 경영 대안을 선택할 수 없게 만들었다.
5. 규제의 개선방안
- 도서정가제의 개선방안은 간단한 문제이다.
- 해당 규제를 완전히 없애면 지금과 같은 시장의 왜곡현상은 사라질 것이다.
- 자유로운 시장의 메커니즘 안에서 경쟁을 통해 가격이 형성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 이를 통해 소비자에게 양질의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 같은 혹은 적은 금액으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급자가 선택을 받는 것이 당위론적으로도 옳고, 더하여 실제로 규제가 없는 시장에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 또한 소비자는 가격 선택의 폭이 넓어지며, 서점 및 출판사는 경영 대안의 폭을 넓힐 수 있게 된다. 그러한 이유에서 도서정가제는 완전히 폐지할 필요가 있다.
- 특정 베스트셀러의 국가별 평균 판매가격을 비교해보면 도서정가제를 시행하는 프랑스와 독일의 가격 수준이 도서정가제가 없는 미국이나 영국보다 높았다.
- KDI의 연구논문에 따르면, 국가별 고정효과를 제거하기 위해 각국의 베스트셀러 성경가격과 미국의 도서판매가격을 기준으로 표준화하여 비교한 결과 도서정가제를 채택한 나라들의 도서판매가격이 다소 높게 나타난다.
- 또한 Publishers Weekly의 2011년 보고서에 나타난 베스트셀러들의 국가별 평균판매가격을 살펴보아도 도서정가제가 유지되는 프랑스와 독일의 가격수준이 도서정가제가 없는 미국이나 영국보다 높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 도서정가제 폐지를 외치면 하면 중소서점의 몰락을 가속화하고 도서유통시스템을 무너뜨린다는 주장을 할 것이다.
- 그러나 중소서점의 몰락은 이미 현행 도서정가제 시행 이전부터 진행되었다.
- 2013년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2013년 전국 순수 서점 수는 1625개로 2011년 대비 127개(7.2%) 줄었다.
- 뿐만 아니라 대형서점인 교보문고의 2013년 매출액도 2012년에 비해 3.7% 감소하였다.
- 즉, 중소서점뿐만 아니라 도서출판 관련 산업 자체가 몰락의 위기에 빠져있었다.
- 또한 중소서점의 몰락을 가속화한 것은 도서정가제였고, 이는 위에 제시한 중소서점의 매출액 감소에서 알 수 있다.
- 중소서점이 되살아나기 위해서는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
- 비가격경쟁, 즉 서비스 및 재화의 품질 등으로 충분히 경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 이러한 움직임은 벌써 나타나고 있다. 독립서점 열풍이 바로 그것이다.
- 독립서점은 소위 ‘동네책방’이라고 하는 곳들이 체험과 큐레이션에 집중하면서 발생한 형태이다.
- 독립출판물·그림책·반려동물·도시생활·뮤지션 등 특정 분야 도서 위주로 취급하는 등 서점 주인의 안목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큐레이션은 그 서점만의 콘텐츠, 즉 가장 강력한 차별화 전략이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이 찾아오도록 만들 수 있는 것이다.
- 이러한 시장 메커니즘이 잘 지켜질 수 있으려면 오히려 한국출판인회의 같은 조직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 한국출판인회의는 법적 도서정가제 첫 시행 이전인 2000년에 이미 자율규제로서 도서정가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 이들은 당시에도 도서정가제를 위반하고 있는 도서공급업체에 책을 공급하지 않기로 결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 개인적으로 이는 자율규제를 가장한 가격카르텔이라고 생각한다.
- 가격카르텔은 2인 이상의 사업자가 가격산정방식의 설정을 통한 가격결정, 최저판매가격 설정 등의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 한국출판인회의가 보였던 모습도 마찬가지의 특성을 가진다.
- 따라서 이들은 일종의 독점 사업자의 지위를 갖게 되는데, 사실 그들이 독점이윤을 얻게 된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 도서정가제와 국민들의 독서율 저하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되면서 도서출판산업이 몰락하였고, 따라서 정가제를 찬성한 측의 이윤도 보장되지 않았다.
- 그렇기 때문에 규제되어야 할 것은 도서의 가격이 아니라 일종의 가격카르텔을 형성하려 하는 동시에 정치적 계산을 통해 규제를 생성시키는 이익집단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겨레, “민음사·교보문고 적자…도서·출판업계 위기 심화”, 2014.05.18.
KDI, 「도서정가제와 도서소비자의 편익」
중앙일보, “'도서정가제' 프랑스·독일은 하고 영·미는 안해, 왜?
최병선, 「정부규제론」
노컷뉴스, “도서정가제 개정 2년, 온라인 서점 나홀로 '호황'"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18 출판산업 실태조사」
마이크로밀엠브레인, 「도서정가제 관련 인식조사」
이혜영, 「도서정가제 사례연구: 규제와 소비자 보호의 딜레마–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경제 이야기(Economic story) > 다시 듣는 경제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율규제 사례분석 - 4.연예기사 댓글폐지 (0) | 2022.07.01 |
---|---|
효과적 규제사례 분석 - 3. 쓰레기 종량제 (0) | 2022.07.01 |
규제 실패 사례탐구 - 2. 게임물 관리 및 심의 규제 (0) | 2022.03.27 |
대기업과 독점 0-1. 2021년 국정감사와 동네북들 (0) | 2021.10.16 |
댓글